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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험을 공유합니다.

도덕과 윤리를 신앙 위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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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0대를 살아보니 도덕과 윤리의 최종 가치를 한자성어로 풀이하면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으로

생각이 되더라.

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 상대의 입장에 한 번씩 서보는 것이 진심이고 누군가를 불쌍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

가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기기에 그러하다.

이렇게 측은지심가 역지사지를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것이니

윤리와 도덕은 이러한 덕목을 가르치는 것 같다.

그런데 나름 중년의 인생을 살아보니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거룩한 가치는 바로 신앙이더라.

참으로 웃긴 게 사람이 아프고 힘들면 바르게 살기보다는 살려달라는 목마름이 더욱 강해지고 이 때 

붙잡게 되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.

아마 누구나 한번 즈음은 "하나님, 부처님 저희 000을 살려주시고 낫게 해주세요"라는 기도나 불공을

한 적이 있을 것이다.

나는 왜 신앙이 거룩한 가치라고 생각하냐면 인간이 나약할 때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고 그럴 때 사람들은

조금이라도 위안과 평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.

젊거나 돈이 많거나 권력이 드높을 때 나는 나를 믿는다는 교만에 살지만 우리는 곧 알게된다.

병앞에서 죽음 앞에서 힘든 고난 앞에서 사람이 얼마나 힘이 없고 나약한 존재인지 말이다.

그래서 나는 가끔씩 젊을 수록 죽음이라는 묵상을 하면서 겸손해지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.

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

경험상 나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임을 잘 알기에 마누라가 암이 걸렸을 때 부모님이나 형제가 뇌졸중에 걸렸을 때

전지 전능한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고난도 감사하게 받았다.

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불행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극복하는 건 한계가 있다.

이럴 때 종교에 의지해서 힘든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의미를 해석해가면서 설령 그 끝이 죽음이라도

천국이 있기에 잘 견디고 그 속에서도 행복을 가질 수 있다.

"쉽게 말하면 신앙 생활로 인하여 현실의 고통보다 미래 천국에서 가져다 줄 행복이 훨씬 크다는 걸 

  깨닫고 알기에 지금의 고난도 감사하게 받으면서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거다"

사실 불교의 교리는 잘 모르지만 분명 거룩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이

심플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삶을 믿고 쫓다가 천국에 가는 건데 그리스도가 살아 온 핵심은 이러하다.

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고 도저히 섬길 수 없는 사람도 섬기는 게 예수님의 삶이었는데

우리는 이것을 어떠한 상황적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다.

세상은 반드시 그 끝이 있기에 잠시 힘들더라도 이렇게 예수님의 삶을 쫓다보면 영생의 기쁨을 누린다는 거다.

과거 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정도로만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.

마태복음 25:40절 "네 형제 중 지극히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"라는 구절에서 알려주듯이

예수님은 섬김을 당하려 오신 게 아니라 섬김려 오신 분이다.

세상에 어느 신이 사랑, 봉사, 헌신을 하면서 제자들에 발을 씻겨주던가?